어학전문학술지 <형태론>에 있는 질의 응답이다.
얼마 전 수업시간에 피동사와 사동사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하길래 인터넷을 뒤졌다.
결국 러시아어에는 피동, 사동의 범주 구분이 없어서 그랬던 거였다.
다음 시간에 다시 설명해 주어야겠다.
질의 2. 피동사와 사동사의 구성적 차이점을 어떻게 구별하는지요?
능동형과 피동형 범주만 있는 러시아어와는 달리 한국어에는 능동형, 피동형, 사동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피동사와 사동사의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즉 피동사와 사동사의 구성상 차이점, 형태적, 기능적, 의미적인 차이점들을 구별하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예를 들면 ‘먹다(주동사)’가 ‘먹이다’가 될 경우, ‘엄마가 동생에게 밥을 먹이다(사동사)’라는 문장과 ‘철수네 소를 먹이다(피동사)’라는 문장의 의미상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또 ‘타다’와 ‘태우다’의 관계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능동사와 주동사란 용어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꼬미싸로바 빅토리아, 러시아유학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재학).
☞ 답변
한국어는 능동 대 피동, 주동 대 사동의 대립 관계를 가지고 있고 피동사와 사동사가 형태상의 공통점을 보이기도 하여 외국어를 모어로 하는 화자들에게 혼동의 우려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질문자가 제기한 문제는
첫째, 피동사와 사동사가 어떤 차이가 있느냐?
둘째, 능동사와 주동사의 용어의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의 2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먼저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능동사는 피동사에 대립되는 용어이고 주동사는 사동사에 대립되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능동사와 주동사 양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행하는 행위나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라는 점에도 의미상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만 능동사는 피동사와 대립되는 용어이기 때문에 주어가 서술어의 행위의 피해자나 수혜자가 되는 것이 아닌 동작주(행동주)라는 의미를 가지고 주동사는 사동사에 대립되는 용어이기 때문에 주어가 남에게 서술어의 행위를 시키는 사동주가 아니라 스스로 행위를 하는 동작의 주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능동사는 동시에 주동사가 될 수 있으며 능동사나 주동사를 특징 짓는 특별한 표지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능동사나 주동사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는 각각 피동사와 사동사와 비교되었을 때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능동사나 주동사를 따로 묶어서 다루지 않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피동사와 사동사의 차이에 관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로 나누어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피동사는 파생접미사 ‘이, 히, 리, 기’에 의해서 형성되기도 하고 ‘-어지다’에 의해 형성되기도 합니다. 반면 사동사는 파생접미사 ‘이, 히, 리, 기, 우, 구, 추’ 등에 의해 형성되기도 하고 ‘-게 하다’와 같은 통사 구성이 결합하여 형성되기도 합니다. 물론 ‘-어지다’나 ‘-게 하다’에 의해 형성된 피동 표현과 사동 표현을 피동사, 사동사로 부르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어지다’에 의한 피동 표현은 하나의 동사로 볼 수도 있지만 ‘-게 하다’에 의한 사동 표현은 분명히 하나의 동사는 아니기 때문에 사동사로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외국인들이 피동사와 사동사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접미사 ‘이, 히, 리, 기’가 피동사와 사동사에 공통적으로 붙기 때문일 것입니다.
둘째, 피동사와 사동사가 경우에 따라 동일한 접미사에 의해 형성되기는 하지만 의미나 기능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피동사는 ‘다른 사람(혹은 동물이나 사물)의 행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동작’을 나타내는 피동문에 쓰이며 기본적으로 자동사입니다. 그렇지만 사동사는 ‘다른 사람(혹은 동물이나 사물)로 하여금 어떤 동작을 하도록 시키는 일’을 나타내어 사동주(동작을 시키는 사람)과 피사동주(동작의 시킴을 받는 사람)가 나타나는 사동문에 쓰이므로 당연히 타동사입니다.
질문자가 예시한 ‘먹이다’의 예를 사동사와 피동사로 구별하셨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엄마가 동생에게 밥을 먹이다’뿐 아니라 ‘철수네 소를 먹이다’ 역시 사동사입니다. ‘먹다’의 피동사는 ‘먹이다’가 아니라 ‘먹히다’입니다.(예: 토끼가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다). ‘먹다-먹이다(사동사)-먹히다(피동사)’와 달리 ‘보다-보이다(사동사, 피동사)’처럼 사동사와 피동사가 같은 형태를 가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질문자가 예시한 ‘타다-태우다’의 관계는 ‘타다’는 ‘주동사’이고 이에 대한 사동사가 ‘태우다’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태우다’는 ‘타다’에 사동형 ‘이’와 ‘우’가 중첩되어 형성된 것입니다.(물론 ‘이’와 ‘우’가 한꺼번에 붙었는지, 시기를 두고 차례로 붙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고 좋은 질문을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질문자의 질문이 주로 ‘사동사’와 ‘피동사’에 집중되어 있어 자세하게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사동사’와 ‘피동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동문’과 ‘피동문’에 대해서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편집위원 구본관)
구본관 위원의 답변에 대하여 덧붙입니다. 예로 든 ‘철수네 소를 먹이다’는 ‘철수네가 소를 먹이다’의 의미인지, 아니면 ‘철수네가 소에게 (풀을) 먹이다’인지요? 후자라면 예가 잘못되었고 전자라면 주격조사를 붙인 ’철수네가‘로 고쳐야 합니다. 여기서는 전자라 보고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이는 구본관 교수의 설명과 같이 사동사입니다. 그러나 일반적 사동사와 같이 사동주와 피사동주를 설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형태만 사동사이지 기능상으로 ‘사육(飼育)하다’란 의미의 독자적인 타동사입니다. 그래서 최현배는 이런 동사를 ‘환원본동사’라고 하였습니다. ‘소를 먹이다’의 ‘먹이다’는 주동사 ‘먹다’와 관련시키지 않아도 직접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관련 논의는 고영근의 <최현배의 학문과 사상>(집문당, 1995, 320쪽)을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편집대표).